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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루소]이성인가, 감성인가 – 볼테르와 루소, 계몽의 두 갈래길

굿 데이 2025. 5. 24. 09:40

이성인가, 감성인가 – 볼테르와 루소, 계몽의 두 갈래길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자유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 볼테르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 루소

18세기 프랑스, 계몽의 광명이 유럽을 밝히던 시대.
그 안에는 두 개의 완전히 다른 빛이 있었습니다.
이성의 선명한 등불을 들었던 볼테르,
감성과 자연으로 돌아가자던 루소.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의 사상을 혐오했고,
심지어 개인적으로도 원수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두 사람 모두에게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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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명은 진보인가, 타락인가


볼테르는 문명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과학과 기술, 철학과 예술의 진보가
인류를 어둠에서 구해낼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고자 했죠.

반면 루소는
문명이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봤습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하지만,
사유재산과 경쟁, 허영이
인간을 왜곡시켰다고 말합니다.

볼테르는 ‘계몽주의의 낙관’,
루소는 ‘문명비판의 선구자’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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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란 무엇인가 – 볼테르는 ‘말할 자유’, 루소는 ‘살 자유’

볼테르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종교적 권위와 전제군주제를 신랄하게 풍자하며
‘사상의 자유’를 위해 싸웠습니다.

루소는 달랐습니다.
그에게 자유는 단순한 외적 권리가 아니라
‘내면의 자율성’, 즉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상태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자유는
공동체의 ‘일반의지’에 따를 때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개인의 권리를,
다른 한 사람은 공동체의 조화를 말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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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육에 대한 극과 극의 시선

볼테르는 엘리트 교육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지식인의 역할을 중시했고,
지적인 소수자들이 대중을 계몽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루소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에밀』에서 보이듯,
그는 아이를 자연스럽게 자라게 해야 하며,
경쟁보다 내적 성장과 자발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자연주의 교육’의 뿌리는
바로 루소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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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교를 둘러싼 미묘한 차이

볼테르는 기독교적 종교 권위에 반대하며
신을 믿되,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신론자(deist)로,
자연과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반면 루소는 종교적 감정에 더 가까웠습니다.
『신앙 고백』에서는
신을 향한 경외감과 신비주의적 감정을 고백하기도 했죠.
그는 신을 믿는 것이
‘이성적 설명’을 넘는 감성적 체험이라고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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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 사람의 싸움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볼테르와 루소는 생전에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했습니다.
루소는 볼테르를
“기득권의 하수인”이라고 비난했고,
볼테르는 루소를
“자기연민에 빠진 광인”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상가의 긴장은
단순한 사적 불화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두 개의 응답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볼테르적인 이성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도,
루소적인 감성과 자연 회귀에 목마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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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 계몽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를 말합니다

볼테르와 루소는 서로를 거부했지만,
그 둘의 긴장 속에서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성과 감성, 문명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규범…
우리는 어느 한쪽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흔들리며
스스로의 ‘계몽’을 이뤄나가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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